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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Tigers :)/치고 달리는♬

"추신수 선수, 故 노무현 대통령 애도글"


추추트레인 ML일기<7>



지난 토요일이었습니다. 원정 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아내가 전화를 했더라고요.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면서, 집 뒷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 뉴스로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솔직히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숙소로 돌아와 인터넷에 접속해 보니까 아내의 말이 사실이더군요.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대충 알고 있었어요. 노 전 대통령이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는 점도, 가족들이 모두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전직 대통령의 신분으로 자살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무엇이 그 분을 떠나게 했을까요? 그 어떤 것이 그 분을 숨 쉬게 하지 못했을까요? 그날 밤 전 복잡한 심경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다음날 클리블랜드 구단관계자를 찾아갔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서 어떤 형태로든 제 마음의 슬픔과 조의를 표하고자 유니폼에 검은색 리본을 달겠다고 말했더니 구단 측에선 메이저리그 규약을 거론하며 절대 안 된다고 하더군요. 한국의 모든 국민들이 비통함에 잠겨있는데 혼자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경기에 출장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저는 노 전 대통령과 어떤 인연도 없습니다. 그저 그 분의 소탈한 성격과 원칙을 중시하는 강직함, 그리고 국민들, 특히 가진 게 별로 없는 농촌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은 저절로 그 분에 대한 존경심이 들게 했습니다. 세상엔 그 분이 받았다는 '그 돈'보다 더 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나쁜 짓을 하고서도 두 다리 쭉 뻗고 잘 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전에 전직 대통령들이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고 가족, 친척들이 모두 검찰에 불려갔어도 시간이 흘러가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갑니다. 왜 노 전 대통령은 그걸 견디지 못하고 삶을 마감해야 했을까요?

오늘 방송을 보니까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 경복궁과 시청앞 광장이 온통 노란색으로 뒤덮여 있더라고요. 자발적으로 노제에 참여한 시민들과 유족들의 눈물을 보면서 마음 한 곳이 아려왔습니다. 경찰차가 시청앞 광장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에선 지금이 2009년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곳의 한 방송사에서 진기하게 둘러싸고 있는 시청 앞 경찰차들을 보여주는데 어찌나 낯 뜨겁고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참, 지난주에 메이저리그를 취재하는 한국 기자들에 대해 한마디하겠다고 한 것 기억하시나요? 요즘엔 한국 기자들 보는 게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특파원들이 없어요. 그런데도 제 기사는 계속 나오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모 신문사의 통신원이라는 여성 분이 절 찾아오셨습니다. 알고 보니 현지 유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야구에 대한 기본적인 룰이나 상식은 물론이거니와 메이저리그 라커룸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경기 후 절 만나러 오신 것까진 좋은데 절 찾기 위해 라커룸을 뒤지고 다니셨어요. 한 선수가 저한테 와선 '어떤 동양 여자가 추를 찾는다'고 귀띔해주더라고요. 결국 그분을 데리고 나와서 인터뷰를 해야 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걸려오는 기자분들 전화는 모두 안 받습니다. 통신원도, 유학생도 좋은데 야구 담당 기자들이 직접 현장에 와야 하는 게 아닐까요? 상주하지 못한다면 한 번이라도 직접 와서 제가 하는 걸 지켜보고 기사를 써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경기에 출장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몸에 이상이 있다'라고 추측성 기사를 쓰지 말고 저한테 직접 얘길 듣고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 절 인터뷰하러 오는 한국 기자분들도 많아지겠죠?

오늘(30일·한국시간) 프로그레시브필드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의 홈경기에서 전 선발에서 제외됐다가 6회 말 대타로 나섰습니다. 어느 분이 문자중계를 보다가 '추신수가 손가락 부상을 당했다'라고 썼나 봐요. 친구들이 전화를 해오더라고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오늘 선발에서 제외된 건 어제 경기가 끝난 후 웨지 감독님이 무조건 오늘은 쉬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매일 경기에 출장하다보니 제 컨디션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신 거죠. 경기장에도 12시에 오지 말고 4시 이후에 출근하라고 하시면서 만약 4시 전에 제 얼굴이 보이면 벌금을 내게 할 거라며 강경하게 말씀하셨어요. 경기 전 연습도 안 했고 라커룸에서 쉬다가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팀이 몰리니까 결국 6회에 대타로 나가게 하시더라고요. 비까지 내려 1시간 30분이나 경기가 지연됐고 결국 밤 12시 30분이 돼서야 경기가 끝났어요.

클리블랜드에는 4일 연속 비가 내렸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한국의 '그 분'을 떠올렸습니다. 편히 잠드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클리블랜드에서 추신수





너무 멋진 글이라 가져왔습니다 ^^ 자신의 상황을 노 전 대통령의 상황에 비추어 쓴 글이 정말 멋지군요.
야구선수가 뭐 이리 글을 잘 쓴답니까... ^^ 이래저래 .. 정말 멋진 선수가 아닐수 없네요..